2편 : 전쟁의 신이자 패배한 황제, 치우천황의 전설
1. 붉은 전사의 탄생, 치우천황
치우천황(蚩尤)은 동이족 계열로 추정되는 전설 속 인물로, 붉은 갑옷과 무기로 중무장한 전사 집단의 수장으로 묘사된다. 그는 81명의 형제와 함께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하며 고대 중국의 황제 헌원(軒轅)과 맞서 싸운 인물이다. 그의 모습은 일반적인 인간과는 달리 쇠로 된 이마, 청동 머리, 철제 발톱 등으로 형상화되며, ‘금속의 신’, ‘전쟁의 신’으로도 숭배받는다. 치우천황은 하늘의 질서를 거스른 반역자가 아니라, 오히려 독립성과 용맹함의 상징으로 동아시아 여러 민족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왔다.

2. 황제 헌원과의 결전
치우천황과 황제 헌원 사이의 전투는 단순한 지역 간 다툼이 아니라, 고대 세계의 패권을 놓고 벌인 전쟁이었다. 이 싸움은 지금의 중국 허베이성 즈루(涿鹿) 지방에서 벌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양 진영은 신기술과 신화를 동원한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치우는 짙은 안개를 일으켜 적군의 진형을 혼란에 빠뜨렸지만, 헌원은 나침반의 조상 격인 ‘지남차’를 이용해 길을 찾아 승기를 잡는다. 이 전쟁은 결국 황제 헌원의 승리로 끝났고, 치우는 참혹한 최후를 맞이한다.

3. 패배했지만 신이 된 전사
전쟁에서 패한 치우는 죽음을 맞았지만, 그의 용맹함과 충성심은 전설로 남게 된다. 이후 그는 민간 신앙에서 '전쟁의 신'으로 숭배되며, 병사들의 수호신으로 모셔지게 된다. 특히 한나라 때부터는 국가적으로 제사를 지내는 대상이 되었고, 조선시대에는 ‘치우천황탑’이 세워지기도 했다. 조선의 무관들은 전쟁을 앞두고 치우의 깃발을 들고 출정했을 정도로 그의 위상은 신성 그 자체였다. 그가 보여준 불굴의 정신은 시대를 초월해 한민족에게 전해진다.

4. 역사와 신화 사이의 영웅
치우천황은 단순한 전설 속 인물을 넘어 역사적 존재처럼 여겨져 왔다. 고구려의 고분 벽화, 고려시대의 무기 장식, 그리고 현대의 민족주의 담론 속에서도 여전히 그의 이름은 살아 있다. 그는 비록 싸움에서 패했지만, 신화 속 황제 헌원과 맞서 싸운 유일한 존재로, ‘패배한 승자’로 남아 있다. 현대에 와서도 그의 전설은 정치적·문화적 상징으로 재조명되고 있으며, 특히 동북아 고대사와 민족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