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편 : 법으로 세상을 지배한 왕, 함무라비의 유산
1. 메소포타미아의 왕으로 떠오르다
기원전 18세기, 바빌로니아 제1왕조의 여섯 번째 왕으로 즉위한 함무라비는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통일한 위대한 정복자였다. 초기에는 외교와 내부 개혁에 힘썼으나, 곧 힘 있는 군주로 변모해 수메르와 아카드, 앗시리아 지방까지 자신의 통치 아래에 두었다. 그는 단순한 정복자가 아니라,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한 개혁가로 평가된다. 함무라비의 정복은 단순한 영토 확장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법과 질서 아래 문명을 통합하려는 시도였다.

2. 함무라비 법전, 신의 뜻인가 왕의 전략인가
함무라비가 가장 널리 알려진 이유는 바로 ‘함무라비 법전’ 때문이다. 고대 세계 최초의 체계적인 성문법으로, 사회 정의와 질서를 확립하려는 그의 의지가 담겨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유명한 원칙은 단순한 보복이 아니라, 형벌의 균형과 공정함을 상징한다. 이 법전은 신 샤마쉬(정의의 신)로부터 직접 계시받았다고 전해지며, 왕의 통치가 신성한 권위에 기반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는 정치적 정당성과 신의 이름을 빌린 전략이기도 했다.

3. 법의 지배를 이룬 통치
함무라비는 법전을 통해 계급과 역할에 따라 처벌의 정도를 달리하며 체계적인 법질서를 구현했다. 농민, 상인, 귀족, 노예까지 법 앞에 처벌의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시도였다. 왕은 자신을 백성의 ‘아버지’로 규정하고, 억울한 자의 목소리를 듣는 자로서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통치란 단순한 명령이 아니라, 제도와 질서로 백성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것이며, 함무라비는 이를 실현한 초기 사례였다.

4. 유산으로 남은 법과 문명의 흔적
함무라비는 죽은 이후에도 ‘법의 왕’으로 오랫동안 기억되었으며, 그의 법전은 중세와 근대까지 법철학과 제도의 기초로 연구되었다. 바빌로니아는 이후 다른 민족에게 정복당했지만, 함무라비의 법전은 석비에 새겨져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의 이상은 단순히 고대의 유산이 아닌, 인류가 법과 정의를 바라보는 기준이 되었고, 오늘날에도 "법치주의의 시초"라는 명칭으로 회자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