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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철학과 예술을 사랑한 황제
하드리아누스(Hadrian, 재위 117~138)는 로마 제국의 제14대 황제로, 트라야누스의 후계자였다. 그는 단순한 정복자가 아닌, 철학자이자 예술애호가로 불리며 '지혜로운 제왕'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젊은 시절부터 문학과 헬레니즘 문화에 심취했으며, 특히 그리스 철학자들과의 교류를 즐겼다. 통치자가 되자 로마 전역에 걸쳐 문화적 업적을 남겼고, 오늘날까지도 로마의 대표 건축물 중 하나인 판테온을 재건한 인물로 기억된다. 그는 제국을 '정복'보다는 '유지'하고 '다듬는' 쪽에 집중했던 특별한 황제였다.

하드리아누스(Hadrian, 재위 117~138)

 
 
 
2. 제국의 경계를 굳건히 하다 – 하드리아누스 성벽
하드리아누스는 로마 제국의 영토를 확장하려는 대신, 현재의 영토를 지키는 데 집중했다. 특히 영국 북부 지역에서 **'하드리아누스의 성벽(Hadrian's Wall)'**을 건설해 야만족의 침입을 막고자 했는데, 이는 로마의 국경 방어 정책의 상징으로 남았다. 이 방벽은 단순한 군사 시설이 아니라 로마의 질서와 문화를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구조물로, 오늘날에도 영국에서 관광 명소로 사랑받는다. 하드리아누스는 “제국은 더 넓어질 필요가 없다, 더 튼튼해질 필요가 있다”는 철학을 실천한 선구적인 통치자였다.

하드리아누스의 성벽(Hadrian's Wall)

 
 
3. 안티노우스와의 슬픈 로맨스
하드리아누스의 개인적인 삶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그가 사랑했던 젊은 그리스 청년 **안티노우스(Antinous)**에 대한 것이다. 두 사람은 깊은 유대감을 형성했고, 하드리아누스는 안티노우스를 정신적 반려자처럼 여겼다. 그러나 안티노우스는 나일강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으며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이 비극은 하드리아누스에게 큰 충격을 안겼고, 그는 안티노우스를 신격화해 도시를 세우고 동상을 남기기도 했다. 이 일화는 황제의 인간적인 면모와 비극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아 있다.

그가 사랑했던 젊은 그리스 청년 안티노우스(Antinous)와 정원을 거늬는 모습

 
 
4. 고독 속의 황제, 죽음과 유산
하드리아누스는 만년에 병과 외로움에 시달리며 점점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했고, 제국 운영에서 물러나려 했다. 그는 후계자로 안토니누스 피우스를 지명하며 평화로운 정권 이양을 이루어냈고, 이는 이후 ‘5현제 시대’의 안정성을 보장했다. 하드리아누스의 유산은 단지 정치적 성공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로마의 문화적 황금기를 이끈 중심 인물로 평가받으며, 오늘날까지도 '건축과 사색의 황제'로 회자된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작은 영혼아, 너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시를 남기며,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고뇌를 보여주었다.

고독 속의 황제 하드리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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