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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들의 혈통을 자처한 젊은 정치가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기원전 100년경, 고귀한 줄리우스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스스로를 여신 비너스의 후손이라 여겼고, 이로 인해 로마 사회에서 강한 상징적 정당성을 얻게 된다. 젊은 시절부터 카이사르는 웅변술, 정치력, 군사 전략까지 다방면에 재능을 보이며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로마의 정쟁 속에서 그는 포퓰라레스(민중파) 정치 노선을 통해 민심을 얻었고, 서서히 권력의 중심으로 나아갔다. 그는 단순한 정치인이 아닌, 신화적 후광을 입은 인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젊은 정치가 카이사르

 
 

2. 갈리아 정복과 로마의 영웅

카이사르는 집정관 임기를 마친 뒤 갈리아 총독으로 임명되어 서유럽 원정을 시작한다. 이때 그는 갈리아(지금의 프랑스 일대)를 정복하며 막대한 부와 명성을 얻는다. 특히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Veni, Vidi, Vici)"라는 전언은 그의 속전속결의 전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군사적 성공은 로마 원로원에 위협이 되었고, 결국 카이사르는 루비콘 강을 건너며 내전의 서막을 연다. 이는 로마 공화정의 근간을 흔든 중대한 사건이었다.

갈리아(지금의 프랑스 일대)를 정복하다

 
 

3. 종신독재자, 공화정의 무너짐

내전에서 승리한 카이사르는 로마의 유일한 지배자로 군림한다. 그는 ‘종신독재관(Dictator perpetuo)’이라는 전례 없는 지위를 부여받고, 달력 개정, 토지 분배, 귀족 개혁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한다. 그러나 그의 권력 집중은 공화정을 중시하던 원로원과 귀족들에게 커다란 불안 요소가 되었다. 그들은 그가 스스로 왕이 되려 한다는 의혹을 품고, 공화정 수호를 명분으로 암살 음모를 꾸민다. 아이러니하게도, 공화정의 적이라 여겨진 인물이 실상은 로마를 부흥시키고자 했던 이상주의자였을지도 모른다.

로마 원로원 앞에서 왕관을 거절하는 카이사르

 
 

4. 브루투스의 칼, 비극의 끝

기원전 44년 3월 15일, ‘이드의 날(Ides of March)’. 카이사르는 원로원 회의장으로 향하던 중, 가장 가까운 동료 브루투스를 비롯한 귀족들에게 암살당한다.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그의 마지막 말은 배신의 상징으로 오늘날까지 회자된다. 그의 죽음은 공화정을 회복시키기는커녕 새로운 내전을 불러왔고, 결국 그의 후계자인 옥타비아누스가 제국의 첫 황제로 등극하며 로마는 제정 시대로 접어든다. 카이사르의 죽음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그는 신격화되며, 그의 이름은 곧 ‘황제(카이사르, 차르, 카이저)’로 세계사에 남게 된다.

암살당하는 카이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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