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황제가 된 황태자
아르카디우스는 377년경에 서로마 제국의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와 그의 아내 아엘리아 플라키디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황제로서 길러졌고, 383년에 아버지에 의해 동방의 공동황제로 임명되었다. 이후 395년, 테오도시우스가 사망하면서 아르카디우스는 정식으로 동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형제인 호노리우스는 서로마를 맡으며 제국은 사실상 둘로 나뉘게 되었다. 하지만 아르카디우스는 젊고 경험이 부족했으며, 통치 초반부터 외부 세력의 조종을 받기 시작했다.
2. 권력의 이면, 궁정 내 암투
아르카디우스의 통치 기간은 사실상 궁정 관리들과 그의 아내, 에우독시아 황후의 권력 다툼의 무대였다. 초기에는 강력한 권신 루피누스가 실권을 장악했으나, 그가 암살되자 고트족 장군 가이나스, 그리고 오랜 숙적 에우트로피우스가 권력을 차지했다. 특히 에우트로피우스는 환관 출신으로, 황제를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며 대규모 군사 개입과 고위직 인사를 좌우했다. 이후 아르카디우스는 자신의 아내 에우독시아에게 점차 휘둘리게 되었고, 그녀는 정치적으로 적대적이었던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대주교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를 추방하기까지 했다.
3. 불안정한 동로마의 시작
아르카디우스는 내내 권력을 쥐지 못하고 조정의 인형으로 남았다. 그의 재위 중 동로마는 외적의 침입, 군부 내 반란, 종교적 분열 등으로 불안정한 시기를 맞았다. 서고트족의 대규모 침입이 있었으며, 이민족 장군들의 반란은 수도의 안전을 위협했다. 정치적 혼란은 제국의 기강을 약화시켰고, 외교적으로도 도전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은 로마의 유산을 동방에서 이어가며 살아남았다. 이때 아르카디우스가 보여준 유일한 정치적 결단은 아들 테오도시우스 2세를 후계자로 세우고 체계를 정비하려 했던 점이다.
4. 조용한 최후, 그러나 묵직한 그림자
408년, 아르카디우스는 병으로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거대한 충격이 되지 않았고, 많은 이들은 그가 실질적인 통치자가 아니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통치기는 동로마 제국이 로마로부터 실질적으로 독립하며 자체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과도기였다. 그가 남긴 유산은 결코 작지 않았다. 비록 스스로 통치력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그가 통치한 시대는 비잔틴 제국으로의 변화를 준비하는 시기였고, 그의 아들 테오도시우스 2세는 그 기반 위에서 제국을 더욱 정비하게 된다. 아르카디우스는 '존재했지만 통치하지 않은 황제'로 기억되며, 그 속에 비극적인 무게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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