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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뜻하지 않은 즉위, 무거운 왕관

기원전 336년, 아케메네스 왕조의 혼란 속에서 다리우스 3세는 운명처럼 제국의 왕위에 오른다. 본래 귀족 출신 장군 바고아스의 꼭두각시로 왕위에 오를 예정이었으나, 다리우스는 의외로 강한 독립성과 의지를 드러냈고 바고아스를 제거해버렸다. 하지만 당시 페르시아는 중앙 권력의 약화, 속주들의 반란, 부패한 귀족들로 인해 이미 쇠퇴의 길을 걷고 있었다. 다리우스는 이 거대한 혼돈의 배 위에 오른 것이다.

제국의 마지막 황제 다리우스 3세

 

 

2. 알렉산드로스와의 충돌, 제국의 위기

다리우스 3세의 가장 큰 시련은 마케도니아의 젊은 정복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등장이다. 알렉산드로스는 그라니코스 전투(기원전 334년)와 이수스 전투(기원전 333년)에서 페르시아군을 연달아 꺾으며 다가왔다. 이수스 전투에서는 다리우스의 가족들까지 포로로 잡히며 그의 권위는 크게 흔들렸다. 다리우스는 금과 은으로 가득한 평화 제안을 했지만, 알렉산드로스는 "세상의 패권은 나눌 수 없다"며 거절했고, 전쟁은 계속되었다.

이수스 전투에서 혼란에 빠진 다리우스 3세

 

 

3. 가우가멜라, 마지막 승부

기원전 331년, 다리우스는 가우가멜라 평원에서 알렉산드로스와 마지막 결전을 벌인다. 이 전투에서 그는 수십만 명에 이르는 대군을 동원했지만, 전략적 유연성과 민첩한 전술을 가진 마케도니아 군에게 무릎을 꿇는다. 패배 후 다리우스는 전장에서 또다시 도망치며, 자신을 따르던 귀족들로부터 신뢰를 잃는다. 제국의 중심인 바빌론과 수사는 알렉산드로스에게 점령당하고, 페르시아 제국은 사실상 붕괴 상태에 빠진다.

민첩한 전술을 가진 마케도니아 군

 

 

4. 배신과 죽음, 그리고 역사에 남은 이름

패잔병이 된 다리우스 3세는 동부로 달아났지만, 그를 따르던 사트라프 베소스에게 배신당한다. 베소스는 다리우스를 포박하고 살해한 뒤 자신이 새로운 왕이라 자처했으나, 결국 알렉산드로스에게 잡혀 처형당한다. 다리우스는 왕으로서 실패했지만, 끝까지 제국의 재건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운의 군주’로 불린다. 그의 죽음은 아케메네스 왕조의 종말이자,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마지막 숨결이었다.

사막에서 배신자에게 포박당한 다리우스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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