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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산의 왕좌에 오른 마지막 왕

엘람은 기원전 3000년경부터 메소포타미아 동쪽에 자리 잡았던 찬란한 고대 문명이다. 그 마지막 왕으로 알려진 ‘후룸바르’는 젊은 나이에 즉위하여 왕국의 운명을 짊어졌다. 그는 학문과 신전 재건에 힘쓰며 번영을 꿈꿨으나, 이미 엘람은 내부적으로는 귀족 간의 분열, 외부적으로는 아시리아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었다. 후룸바르는 조용한 지혜를 가진 군주였지만, 결단력 부족과 이상주의는 위기의 시대에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다.

엘람의 마지막 왕 후룸바르

 

 

2. 신들의 침묵, 점점 어두워진 하늘

엘람의 신전은 오랫동안 도시의 중심이었고, 제사장은 왕의 정통성을 지지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후룸바르가 통치한 시대에 들어서면서 신탁이 끊기고, 신전의 제사장들조차 신의 뜻을 해석하지 못하기 시작했다. 이는 백성들 사이에 불안을 키웠고, ‘신들이 엘람을 버렸다’는 소문이 퍼졌다. 후룸바르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대규모 제례를 열고, 황금으로 신상을 단장했지만, 신들의 침묵은 계속되었고 백성들은 왕의 권위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닫힌 제단

 

3. 아시리아의 그림자와 무너지는 엘람

기원전 639년, 아시리아의 왕 아슈르바니팔은 엘람을 향해 대규모 침공을 감행한다. 후룸바르는 마지막까지 외교로 상황을 해결하려 했으나, 전쟁은 피할 수 없었다. 엘람의 병사들은 용맹했으나, 수적 열세와 내부 분열로 인해 각 도시가 하나둘씩 함락되었다. 왕국의 수도 수사는 결국 불길에 휩싸였고, 후룸바르는 왕궁의 마지막 방에서 충신들과 함께 끝까지 저항했지만, 결국 포로로 잡혔다. 그는 아시리아로 끌려가 조롱받으며 끔찍한 최후를 맞이한다.

아시리아 군대의 침공

 

 

4. 무너진 왕국, 그러나 남은 전설

엘람은 후룸바르의 패배로 역사 속에서 사라졌지만, 그의 이야기는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고대인의 전설 속에 살아 숨 쉰다. 폐허가 된 수사 도시의 흙 속에서 발굴된 점토판에는, “하늘은 그를 버렸으나 그는 백성을 잊지 않았다”는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일부 역사가들은 후룸바르가 신의 축복을 잃은 마지막 왕이라 평가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를 현실 속 이상주의자이자 슬픈 운명의 상징으로 본다. 그의 이름은 무너진 도시와 함께 역사에 깊이 새겨져 있다.

엘람의 점토판 “하늘은 그를 버렸으나 그는 백성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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