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황제가 된 소년, 희망인가 재앙인가
기원후 54년, 열일곱의 어린 나이에 로마 황제 자리에 오른 네로. 그의 어머니 아그리피나는 아버지 클라우디우스를 독살한 뒤 네로를 황제로 옹립했으며, 초반 통치는 세네카와 부루루스 등 유능한 인사들의 조언 아래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되었다. 당시 시민들은 새로운 젊은 황제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고, 초반 몇 년간은 조세 감면, 노예 해방, 검투사 경기를 제한하는 등 긍정적인 개혁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네로는 점차 어머니와 측근들을 제거하며 권력을 독점해 나갔다.

2. 예술가 황제, 현실을 잊다
네로는 정치보다 예술과 공연에 심취했던 황제였다. 그는 자신을 시인, 배우, 연주자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대중 앞에서 수차례 공연에 나섰다. 황제의 연주를 듣는 것은 의무였기에, 귀족들은 끝없는 시 낭독과 리라 연주를 참고 견뎌야 했다. 예술에 대한 그의 집착은 국정을 방기하는 결과를 낳았고, 로마의 행정은 점점 혼란에 빠지게 된다. 특히, 로마 대화재 당시 그가 연주를 하며 "트로이의 멸망"을 노래했다는 전설은 그의 잔혹성과 무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3. 로마의 대화재와 시민의 분노
기원후 64년, 로마는 대화재로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는 재난을 맞이한다. 이 화재의 원인으로 네로가 의심을 받게 되었고, 분노한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 그는 기독교인들에게 책임을 돌렸다. 이로 인해 로마 최초의 기독교 박해가 시작되었고, 수많은 무고한 이들이 잔혹하게 희생되었다. 네로는 재건을 명분으로 자신의 궁전인 '황금궁(Domus Aurea)'을 건설하며 사치의 극치를 달렸다. 이 시기부터 네로는 로마의 수호자가 아닌, 공포의 독재자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4. 황제의 최후, 스스로 불을 끄다
네로의 폭정과 과도한 세금, 무분별한 숙청은 결국 군대와 귀족층의 반란을 초래했다. 그의 충성스러운 군대조차 등을 돌리자 네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고, 결국 기원후 68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죽기 전 남긴 말 “어떤 예술가가 죽는가!”는 예술가로서의 자부심과 황제로서의 몰락을 동시에 담고 있다. 네로의 죽음은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끝이자, 로마 제국의 불안정한 군인 황제 시대의 서막이었다.

'역사와 신화 > 신화 속 왕과 통치자들의 비극적인 최후' 카테고리의 다른 글
15편 : 마야의 그림자 속 왕, 사파타의 몰락 (0) | 2025.04.24 |
---|---|
14편 : 왕의 목이 떨어진 날 – 루이 16세와 프랑스 혁명의 불꽃 (2) | 2025.04.23 |
12편 : 브루투스, 너마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야망과 최후 (0) | 2025.04.22 |
11편 : 하드리아누스 황제: 철학자 통치자의 위대한 평화와 고독 (3) | 2025.04.22 |
10편 : 세계를 정복한 왕, 알렉산드로스의 끝나지 않은 여정 (0) | 2025.04.21 |